정치인 이용빈, 호남영입인사 1호 "시민주권이 최고권력"

세월호 상주 3년, 새로운 각오와 정치 변혁 안겨준 사건
더 나은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세력 결집만이 정치 바꿔
시민주권 최고 권력이 되는 새정치 열어가는 각오 새겨

2019년 07월 20일(토) 11:23
Q 현재 더불어민주당 광산 갑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용빈이 꿈꾸는 정치는 무엇인가?
청진기를 들고 인술을 펼치는 의사이기도 하지만 사회변혁운동과 시민정치활동 참여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고 있다.
시민사회운동과 진보운동이 꾸준히 성장해가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여전히 바닥으로부터의 변혁을 요청받고 있다는 인식 아래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을 모아내는 정치 네트워크 구축에 특히 열정을 쏟았다.
지난 2013년 광주전남직접민주연구원 공동대표를 맡아 활동했으며 2014년 협동조합 시민의 꿈 이사장, 2014년 시민플랫폼 나들을 설립했다.
나들은 시민의 직접 정치 참여를 돕기 위한 플랫폼으로서 현재 130여명의 회원으로 민주시민교육, 토론 전문가 육성, 공유경제, 지혜공유, 청년 활동가 육성, 시민이 직접 정책을 발굴하는 시민의제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Q 지난 2016년 호남영입인사 1호로 민주당에 입당하고 세월호 상주 노릇을 3년 간 했는데 그 의미를 설명한다면?
세월호 사태는 또 다른 각오와 정치 변혁의 신념을 거듭 안겨준 사건이었다.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사태를 온 국민과 함께 충격적으로 겪고 세월호 상주 역할에 3년 간 헌신했다.
그 후 지금까지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결집만이 세상의 불의를 깨치고 시민주권이 최고 권력이 되는 새 정치를 열어갈 수 있다는 각오를 마음속에 새기고 있다.
패권에만 몰두하는 낡은 정치의 답습만으로는 사회 양극화 극복과 평화통일의 꿈 또한 요원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정치 일선에 나설 결심을 굳히고 지난 2016년 호남영입인사 1호로 민주당에 입당하게 됐다.
지난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 광산 갑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 비록 뜻을 이루진 못했다.
비록 국회의원에 낙선했지만 국민의당의 녹색 돌풍 속에서도 34.5%의 득표율을 기록, 정치 신인으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주며 지역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2016년 첫 도전 이후 지금까지 그는 줄곧 더불어민주당 광산갑 지역위원장을 맡아 상향식 정치, 소통의 정치, 정당 현대화 등 정치 혁신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우리고 있다.

Q 더불어민주당 입당이 2016년으로 오래되지는 않았는데 입당 후 역할이나 당직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부의장,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회 부위원장,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광주시 공동선대본부장, 더불어민주당 60년 계승위원회 상임단장, 2018년 더불어민주당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 2019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부위원장 등 중앙당 요직을 맡아 왔다.
특히 2019년 더불어민주당 전국 지역위원회 우수활동사례 공모전에서 민주대상을 수상했으며 당무감사 최우수 지역위원회에 선정되는 등 최선을 다해 지역정치 리더로서의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Q 원래 광산구가 태어난 곳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동안 걸어온 길을 말한다면?
A 1964년 광주 소태동에서 태어나 줄곧 광주에서 살아온 광주 토박이다.
금호고등학교 1학년 때 5·18을 겪었으며, 이때부터 만민이 평등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변혁을 꿈꿨다.
변혁의 소망은 동학혁명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동학의 개벽·생명·평화 사상에서 참다운 삶의 길을 찾겠다는 역사관을 갖추게 됐다.
평소 운동을 좋아하고 호연지기가 남달라 1983년 육군사관학교 43기로 입학했다. 육군사관학교를 3등으로 입학했으며 기초군사 훈련 과정에서 교육대장 표창을 받았으며, 하계군사훈련에서는 생도대장 표창을 받았다. 리더십이 뛰어나다며 1학년 생도회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육군사관학교를 1년 만에 자퇴했다. 군인의 길이 세상을 변혁하는데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육사를 자퇴한 1년 후인 1985년 전남대학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전남대학은 학원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민주화운동이 가열 차게 타올랐으며, 학내 지하운동 동아리에 가입, 투쟁의 대열에 동참했다. 의예과 학생회장, 자연과학대학 학회 연합회장, 총학생회 부학생회장, 총학생회 용봉 대동제 준비위원장, 호헌철폐 및 최루탄 추방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요직을 도맡으며 1987년 6월 항쟁의 선봉에 서서 싸우기도 했다.
군대는 보병 27사단 78연대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지난 2001년 광산구 월곡동에 ‘이용빈 가정의학과’를 개원하고 19년 동안 마을 주치의로 주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광산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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