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입력폼

민족차별, 조롱, 천대 등이 담긴 문빅토르 그림 ‘나스쟈’

민족차별, 조롱, 천대 등이 담긴 문빅토르 그림 ‘나스쟈’
- 광주 고려인마을 그림 이야기,
- 고려인 미술 거장 문빅토르 화백의 삶과 고뇌 담겨
  • 입력 : 2024. 04.24(수) 09:06
  • 광산저널
[광산저널] 광주 고려인마을이 꿈꾸는 세상은 좀 남달랐다. 2000년대 초반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 유랑하는 고려인의 삶에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작업으로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공동체를 통해 꿈꾸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다시는 유랑의 길을 떠나지 않고 후손 대대로 뿌리를 내릴만한 공간을 찾는 것이었다. 과연 이런 꿈들이 이루어질지 아직은 미지수다. 대한민국 정부가 아직도 국내 이주 고려인 동포에게 안정된 정착의 근본인 ‘국적’을 부여할 가능성을 내비치질 않기 때문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국내 이주한 고려인을 대상으로 ‘상생’을 외치고 있다. 과연 국적도 없이 살아가는 고려인의 ‘상생’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지난해 신설된 재외동포청 또한 고려인을 위한 예산을 편성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많은 사람이 그 예산의 수혜자가 ‘고려인’이라 말한다. 하지만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다. 그들은 고려인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치며 돈벌이에 나선다. 하지만 정작 ‘국적 문제’는 관심도 없다. 그저 사업 대상일 뿐이다.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고려인이 한국어에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다. 고려인이 가진 더 많은 관심은 ‘러시아어’를 잊지 않는 것이다. 쫓겨 간 나라에선 ‘러시아어’ 없인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려인의 이주 역사 160년의 긴 세월은 늘 불안에 떨어야 했다. 가난과 학정으로 160년 전 낯선 연해주로 떠났던 선조들은 그들의 삶 속에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격변과 전쟁, 잘 가꾼 농지를 빼앗기고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다. 이런 두려움이 현실이 되어 결국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주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살기 위해서 강인한 민족정신을 기반 삼아 최선을 다해 살았다. 한때는 노력 영웅 칭호도 받았고 우수한 민족이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그 밑바닥에는 소수민족 ‘고려인’이라는 멸시와 천대가 깔려 있었다. 이런 처절한 환경 속에서 살아온 한 미술가가 그의 그림 속에 민족차별, 조롱, 천대 등을 담아 피어린 삶을 살아온 고려인의 삶을 후손들에게 전하고 있다. 그는 다름 아닌 광주 고려인마을에 정착한 문빅토르(73세) 화백이다. 그는 그가 살아온 삶 속에 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작품명은 ‘나스자’ 다. 지난 3월 문을 연 미술관에 거주하며 생산한 작품 중 눈에 띄는 작품은 단연 아크릴 수채화 ‘나스자’다.

강제 이주 당시 러시아의 지배 속에 살았던 고려인의 삶을 풍자하여 그린 작품이다.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는 인형극 속에 나타난 한복 입은 고려인 여성과 남성이 유희의 대상이다. 객석에 앉아 관람하는 러시아인들의 조롱 섞인 야유와 웃음이 들려오는 것 같다. 가난하고 헐벗은 민족, 국가가 돌보지 못해 유랑의 길을 떠나야 했던 불쌍한 민족 ‘고려인’, 이들이 유희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들의 아픔은 조국에서조차 지속되고 있다.

광주에 둥지를 튼 문 빅토르 화백은 고려인 3세로 1951년 카자흐스탄 우슈토베에서 태어나 1975년 알마티 고골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7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1977년 국립고려극장 주임미술가, 1983년 카자흐스탄 풍자잡지 '아라쉬멜' 주임미술가로 활동했다. 그의 대표작은 '1937년 고려인강제이주열차'와 '우수리스크의 우리 할아버지' 등의 작품으로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의 아픔 속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잃지 않는 역사를 그가 개발한 독창적인 화법 '시물탄 기법'으로 그려냈다. 또한 신인상주의 회화 양식 '점묘법'을 활용한 독특한 작품들은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광산저널 gsj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