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남(경감) 광산경찰서 형사계장

성범죄자 대한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지난달 19일 부터 폐지되고 성범죄자 처벌 및 사후관리 강화와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됐다.
아동가족부와 법무부는 성범죄와 관련된 ‘형법’ 및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법률’등 성범죄와 관련된 6개 법률과 150여개의 신설·개정 조문이 지난달 19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수정된 법안에서 가장 큰 변화는 성범죄와 관련한 친고죄가 폐지됐다는 것이다.
그동안 피해자 고소가 있어야 수사했던 성범죄를 일반범죄처럼 제3자의 신고나 수사관의 인지로 곧바로 수사를 개시하고, 피해자와 합의해도 가해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친고죄 폐지는 피해갈 수 없는 시대정신이다. 과거 우리사회는 성범죄를 개인의 성적 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로 인식했다.
하지만 법이 변화된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 개정법에서는 성범죄의 피해 대상을 '부녀자'에서 '사람'으로 넓혀 앞으로는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이제는 남성을 강간한 경우에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진다.
‘강간’에 해당하지 않아 ‘강제추행’으로 처벌했던 남성이나 트랜스젠더 대상 성범죄 처벌 규정을 명확히 세분화했다.
호적상 남자인 트랜스젠더를 성폭행하거나 여성이 남성을 성폭행해도 강간죄로 인정한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등 사회구조변화에 따라 남성들도 성폭력 범죄로부터 보호할 필요가 생겼고 최근 서울 모 대학 여교수가 남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으로 파면당하는 일도 있다. 즉 남성도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
남성강간 외에도 그동안 사회적으로 지적돼 온 성범죄 관련 논의를 광범위하게 반영했다. 시대적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다양한 성범죄를 효과적으로 처벌하게 위해 ‘유사강간죄’도 신설됐다. 기존 법과는 달리 구강, 항문 등의 ‘유사강간’에 대한 처벌도 가능함을 규정했다.
지금까지 강제추행죄로 처벌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 1천5백만 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했지만, 이제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 처벌한다.
친척에 의한 성폭행 처벌 수위도 높였다. 대다수의 성범죄가 지인이나 이웃, 동거가족 사이에 벌어지는 것을 고려한 것이다.
개정안은 친족의 범위에 동거개념을 포함시켰다. 기존에는 ‘4촌 이내의 혈족이나 인척’만 인정했지만, 앞으로는 가해자가 ‘동거하는 8촌 이내의 혈족’에 해당하면 단순강간죄가 아닌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죄로 7년 이상의 징역형으로 가중 처벌한다.
아동. 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간죄를 저지르거나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제작해 수입·수출한 경우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한다.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에 대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 삭제돼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아도 처벌할 수 있다.
아동. 청소년 이용 음란물을 단순 소지한 경우도 앞으로는 1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미성년자도 성인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정보를 실명인증만 거치면 열람할 수 있게 됐다.
성적욕망 충족을 위해 공중화장실, 목욕장 탈의실 등에 침입해 몰래 훔쳐보거나 퇴거요구에 불응한 경우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죄’로도 처벌이 가능해졌다.
1953년 형법이 제정된 이래, 60년 만에 개정된 성범죄 법안은 이전과는 다른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을 보여줬다. 하지만 법이 변화된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의 성범죄에 대한 인식과 문화가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사회의 여성들은 성범죄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성범죄의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정조를 강조하는 우리 문화 속에서 정숙하지 못한 여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 피해 신고도 제대로 못하고 쉬쉬하면서 소극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고, 수사 과정에서도 가해자 측의 끈질긴 합의요구에 따른 2차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피해자에 대한 그릇된 우리 사회의 인식과 성차별적 모습은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잔존하고 있고 그만큼의 더 큰 변화가 필요하다.
성 범죄 피해자의 신상을 보호하는 것에도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의 인권과 존엄을 좀 더 지켜줄 수 있는 사회적 합의와 문화가 절실하다.
이제는 개정된 성범죄법의 변화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성 문화가 바뀌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