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 모든 것을 41세의 나이에 섭렵했다면 아마 놀랄 것이다. ‘뭔가 배경이 화려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모든 것을 그는 젊은 패기하나로 이뤄냈다.
(주)가나다 식품의 최정학 대표이사를 만나 그의 젊은 패기에 어떤 비결이 있었는지 들어본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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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가나다는 매일 새벽에 한국산 닭과 오리를 당일 도계해 본사가 직접 관리하는 체인점에 공급하고 있다.
지난 1995년 3월 국내 굴지의 닭·오리 육가공업체인 (주)하림과 신선육 총판 계약체결로 문을 연 가나다. 당시 CEO인 최정학 대표이사는 대학 4학년으로 나이는 스물셋에 불과했다.
최 대표는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대학교시절 많은 직종의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대학교 4학년 때 우연찮게 1980년도에는 신발사업이 유행을 하고 90년도에는 건설업. 2000년 이후에는 IT를 뛰어넘어 축산업이 유행을 탈 것이라는 확신을 해서다”고 말했다.
가나다는 회사의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따듯한 기업으로 정평이 나있다. 광주·전남에 700여개 업체에 닭과 오리를 공급하고 있으며 올해 3월에 개발한 닭 강정 사업을 현재 15점까지 확대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가나다는 지역사회, 회사 등 모두 함께 성장하자는 기치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가나다는 어등자활센터와 연계해 사업도 추진 중이다. 그 취지는 장애인들의 기술습득과 자활을 돕기 위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가나다의 닭은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서 가격이 비싼 함초자염로 밑간을 하고 있다. 함초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노폐물 분해와 피부미용에 효과적이라서 소위 말하는 가나다는 웰빙 한국산 닭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다.
최정학 대표는 “저희 회사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직을 기본으로 기본 테두리 안에서 새롭게 시작한 가맹점 사업을 올해 안에 20호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내년에 100호점을 달성하고 2015년에 광주 전남을 떠나 전국을 무대로 500호점을 목표로 하면서 지역사회도 같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젊은 패기 하나로 광주·전남 ‘석권’
현재 축산업계는 유명 아이돌스타를 홍보에 내세운 메이저급 브랜드의 속출로 지방기업의 어려움이 점차 가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가나다는 초창기 ‘광주 하림’이란 상호를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가나다’란 독자적인 브랜드로 광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자리 잡았다.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역경도 있었지만 지금의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최 대표의 젊은 패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말이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라를 비교하는 것 보다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자’란 말이다”라며 “고로 ‘열정’이다”고 말했다.
그는 본인 스스로 열정에 부딪쳐서 하는 부분이 엔도르핀이 더 솟을 뿐 아니라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또 “제 개인적인 것은 다른 사람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도 내 자신의 최대치에 나를 비교하자”며 “지금 나는 이만큼인데 더 끌어올려서 더 열정적으로 할 수가 있는데 남만 부러워 할 필요는 없는 것이어서 그런 의미로 그 말을 제일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나이어린 그가 일찍 CEO로 발돋움한 것에 대한 주위의 시선 가장 어려웠다고 그는 말한다.
최 대표는 “나이 부분에서 3자에서 4자로 넘어오니까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며 “지난해에 닥쳤던 역경도 있었지만 그걸 또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일찍 기반을 마련한 기틀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매번 닥쳐오는 역경을 넘어서고 새롭게 또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지금도 일반 사람들은 지금 정도(내 나이)의 나이에 창업을 하게 된다”며 “새로운 창업을 한다는 그 마음으로 지금부터 열심히 일해서 ‘한국산 닭 강정’을 지난해에 런칭해 ‘한국산 닭 강정’을 특허로 내놨다”고 설명했다.
회사에 영업부서가 따로 있지만 최 대표는 영업만큼은 직접 나선다. 헤어스타일도 닭 벼슬과 비슷한 앞쪽 머리를 봉긋 쏟은 머리다. 14년 전부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최 대표는 “처음 저의 헤어스타일을 본 사람들은 베컴이나 싸이 같다고들 한다”며 “제가 싸이나 베컴 보다 나이도 많고, 머리는 15~16년 계속 같은 헤어스타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깔끔한 양복을 입고 영업에 나선다. 그는 “내 직업이 말 그대로 백정이고 3D 업이라고 하지만 깔끔해야 한다”며 “자기 관리를 위해 항상 옷은 깔끔하게 입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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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신념이 강하다는 최 대표의 인생목표는 ‘본인이 잘되는 만큼 사회에 봉사하고 같이 더불어 잘 사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작으나마 지역을 비롯해 회사 직원들이 다 잘 살 수 있도록 공동주택을 지어 함께 멋지게 살아가면서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목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오래 전 시작한 봉사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그는 우연찮은 기회에 국제로타리 3710지구 광주어등로타리클럽과 신흥동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최 대표는 “저는 개인적으로는 봉사는 기본이라고 생각을 한다”며 “봉사는 말 그대로 십시일반으로 큰돈에 욕심이 없이 지역과 사회가 같이 성장해야 한다는 취지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2005년 상호를 ‘광주하림’에서 ‘(주)가나다’로 바꾼 것도 ‘모든 일을 순리대로 원칙대로 천천히 가자’는 취지다.
그는 그 때부터 구청 사회복지과에 본인이 가지고 있는 닭으로 봉사를 하겠다며 문의를 했고 매년 초·중·말복에 수천마리의 닭을 나누고 있다.
이런 나눔에 오는 12일에 있을 어등로타리회장 취임 때도 꽃 화환대신 쌀 화환으로 받아 시설에 기증하려고 한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최 대표는 두 차례의 광주시장상을 비롯해 각가지 감사패와 공로패가 그의 사무실 한쪽벽면을 채울 정도로 가득하다.
최 대표는 신흥동주민자치위원장으로도 4년째 활동 중이다. 그만큼 신흥동에 대한 발전방향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한다.
최 대표는 “저희(신흥) 동 같은 경우는 지금 보면 문화동 같은 경우 시화마을보다 더 유명세를 떨칠 여건이 많이 있다”며 “시화마을은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반면 신흥동은 송정동초등학교를 끼면서 골목마다 사람 사는 인정이 가득한 동네다”고 소개했다.
그는 “시화마을보다 더 멎진 마을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벽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마을의 말미산과 송정공원 등이 있어 나중에 영화를 찍어도 손색이 없을 괜찮을 동네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박재범 기자
2026.10.23(금) 09: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