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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가고 아픔 함께해온 ‘용진(聳珍)’선생

광산의 인물, 故 임동규 24반무예 경당협회 총재
시대를 앞서가고 아픔 함께해온 ‘용진(聳珍)’선생
한국무술총聯, 대한민국 무예 명인 패·인장 수여
1981년 통혁당·남민전 사건 무기 징역형 선고돼
38년 후 재심 청구 5년 만에 무죄판결 명예회복
9월 별세 민주 사회장 5.18 舊 망월동묘역 안장
  • 입력 : 2020. 11.13(금) 12:49
임동규 선생은 1994년 동학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경당 사범과 수련생 100명이 1주일간 참여해서 동학군과 관군의 전투를 재현했다.

1994년에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특별분과위원장으로 참여했고 이후 사단법인 한국전통무예 총연맹 창립 및 고문으로 활동했다.

2000년에는 사단법인 한국전통무예 총연맹 주최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방문해 전통무예 세미나를 개최, 24반무예를 유럽 태권도 사범과 수련생들에게 최초로 지도했다.

2001년 8월에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광주전남지부 의장으로서 평양축전 방북단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방북 목적에 없는 회의 개최 혐의(북한방문 국가보안법 위반(잠입·탈출 등))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2년 6월 및 자격정지 2년 6월을 선고받고 항소했으나 기각됐다.

2008년에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1년 6월 및 자격정지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됐다.

임동규 선생은 2002년에 사단법인 24반무예 경당협회 총재로 취임해 2007년에 미국에서 전통무예 세미나를 개최해 24반무예를 미국 무예 사범들에게 최초로 지도했다.

이후 24반무예 문화재지정 및 훈련원 복원사업, 2005년에 무예도보통지 워크숍 및 24반무예 시범을 국회의원회관에서 무예 단체 최초로 선보이는 등 민족운동과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2014년에 대장암 수술로 요양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6년이 넘게 해야 했다.

임동규 선생은 2014년에 대한민국 무예 명인 패와 인장을 (한국무술총연합회) 받았다.
2019년에는 통혁당 사건으로 1981년 무기징역을 선고한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38년, 재심 청구 이후 5년 만에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부장판사)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회복 했다.
2020년 9월 21일에 세상을 떠나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고 임동규 선생은 5.18 舊 망월동 묘역 안장됐다.

<용진(聳珍) 임동규(林東圭) 선생 연보>
1939년 전라남도 광산군 본량면 지산리 탑동마을 출생
본량초등학교 입학, 광주서중학교 입학, 광주제일고등학교 입학,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입학
1959년 이우재 등과 함께 ‘남산농촌사회연구회’ 활동, ‘구농회’ 협업농장 운동 서울대학교 향토개척단 활동,
1964년 인혁당 사건, 1968년 통일혁명당(약칭 통혁당) 사건연루
박현채와 함께 ‘대중 경제 100문100답’ 집필, 세계정도술협회 사무국장,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총무부장(총간사) 역임.

통일혁명당 재건위원회(약칭 통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지정관, 김재욱, 양정규 등과 함께 체포되어 무기 징역형 선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약칭 남민전) 사건(소위 남민전 인민무력부장) 무기 징역형 선고.
1980년대 감옥에서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24반무예 복원작업, 빗자루 도사(문익환 목사, 김하기 소설 등 증언) 1988년 12월 20일 석방.
1989년 민족 무예 도장 경당(총관장)과 우리 무예 연구회(회장)를 창립 전국 250명 사범과 10만 명 넘는 수련생 배출. 한국의 전통무예 출판, 무예가 연구 출판
1992년 광산구 탑동마을오 민족 무예 도장 경당 이전, 무예도보통지(실연․주해) 출판.
200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광주·전남지부 의장.
2002년 사단법인 24반무예 경당협회 총재 취임. 2014년 대한민국 무예 명인 패와 인장 수여
2019년 통혁당 사건 38년만에 서울고법 형사12부(재판장: 홍동기 부장판사)에 무죄 판결.
2020년> 2020년 9월 21일 폐렴 및 패혈증으로 별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