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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등산 무대 삼아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마을’

어등산 무대 삼아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마을’
황룡강 ‘용(龍)’ 운수리 ‘운(雲)’자 따서 마을 명칭
충민공 양산숙 일가 충효열행 기리는 양씨삼강문,
박상·박순 영정 모신 송호영당, 용아 박용철 생가
  • 입력 : 2022. 09.21(수) 14:29
  • 광산저널
[광산저널] 어룡동 지명은 어등산(魚登山)과 황룡강 지명을 합친 것이다. 어등산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기개를 나타낸다. 동 이름에서 보듯 면적 절반 이상을 어등산이 차지하고 있으며, 서쪽 외곽으로 황룡강이 지나간다.

조선시대 소지면(所旨면)에 속했으며, 1914년 서봉(西峯)리, 인암(仁岩)리, 운수(雲水)리로 조정되어 송정면 관할이 되었다. 어룡동은 현재 소촌동, 박호동, 선암동, 운수동, 서봉동 등 5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박산, 노동, 선암, 서봉 등 십여 개의 자연마을이 남아 있다.

선암역, 선암나루 등 조선시대부터 교통 요충지였던 지역특성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운수IC와 어등대로를 통해 광주 시내로 진입하거나, 호남고속도로 혹은 무안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사통팔달의 지리적 여건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최근 선운지구 개발과 국가산업단지인 빛그린산단의 조성으로 인구유입이 크게 늘면서 상주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어룡동 장점 중 하나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한다는 점이다. 도시민은 농촌을 체험할 수 있고, 농촌은 도시의 각종 편의와 문화시설을 쉽게 누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지역이다.

볼 것도 많다. 어등산과 황룡강 외에 대표적인 역사문화자원은 임진왜란 당시 순절한 충민공 양산숙(梁山璹, 1561~1593) 일가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양씨삼강문, 전라도사와 나주목사 등을 역임한 박상(朴祥, 1474~1530)과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한 조카 박순(朴淳, 1523~1589) 영정을 모신 송호영당, 일제강점기 ‘시문학’을 발간한 시인이자 평론가, 극예술운동가였던 용아 박용철(朴龍喆, 1904~1938) 생가가 있다.

양산숙은 광주목사를 역임했던 송천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셋째 아들로 진주성 전투에서 항전하다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한 의병장이다. 형인 양산룡과 동생 양산축, 어머니 죽산박씨, 누이 김광운의 처, 양산숙의 처 광산이씨 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다.

용아생가는 박용철의 고조부가 지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는 19세기 후반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도시에서 보기 드물게 초가지붕을 볼 수 있으며, ‘시인의 사계’, ‘용아극장’ 등 문화재 활용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일제가 광주신사에 이어 1922년 금봉산 자락에 세운 신명신사(神明神祠)는 1941년 송정신사(松汀神社)로 승격했다. 광복 후 금선사(金仙寺)라는 이름의 조계종 사찰로 개조되었는데, 건물양식, 계단 모서리, 석등 등에 일본양식이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목조로 지어진 신사 건물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건립 당시에는 4개 동이 있었지만, 지금은 본당과 종무소 2개 동만 남아있다.

호남대학교 옆에 위치한 선암마을에는 3층 석탑이 있다. 여말선초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은 본래 5층 석탑이었다고 전해진다. 부재들이 사라져 온전치 못한 형태로 남아 있는데, 과거 선암사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선암탑’, ‘선암사지 3층 석탑’ 등으로 부른다. 탑에는 농경사회의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홈 구멍(性穴)이 하나 있다.

마을 지형이 가마솥 같다 하여 ‘솥머리’로 불렸던 소촌에는 산업과 농공단지가 입주해 있다. 소촌아트팩토리는 농공단지 내 오래된 민방위 비상대피시설 건물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홍보관(쿤스트할레, 아시아문화마루)으로 사용되었던 폐 컨테이너를 조합해 2015년 말 개관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쓰임을 잃고 방치되었던 시설과 아시아문화를 품기 위한 노력이 머물렀던 공간이 만나 지역 문화예술 명소로 재탄생했다.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 전시, 체험활동은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을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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