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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량동, 삶의 터무니 간직한 어진 이들의 고향

탐방 / 광산구 21개 일선 동(洞)
본량동, 삶의 터무니 간직한 어진 이들의 고향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드라이브 코스로 입소문 자자
용산·본촌마을 고인돌‧유물산포지, 입석마을 ‘선돌’ 고인돌
창녕조씨 삼강지려, 오성술 의병장 순절비 ‘문인지사‧의병 흔적’
용진정사 일제강점기 의병 규합 장소, 의병사 4명 의병장 언급
  • 입력 : 2022. 01.21(금) 16:49
  • 광산저널
[광산저널] 도심 속 각박해진 삶을 충전시키기 위해, 혹은 코로나 19로 지친 심신을 달래줄 나만의 휴식처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시원한 바람과 자연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본량동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을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드라이브 코스로 입소문이 자자하다.

도시와 농촌을 잇는 열린 터전으로, 삶의 터무니를 오롯이 지켜가고 있는 본량동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잠시 쉬어가는 건 어떨까? 우리 삶의 소중한 터무니들을 생각해 보면서 말이다.

본량동은 용진산의 꼿꼿한 자태와 물 맑은 황룡강, 평림천의 시원한 물줄기를 한데 만날 수 있는 지역이다.

조선 시대 나주목에 속했으며 여황(艅艎), 장본(章本), 적량(赤良) 3개 면이 있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 3개 면과 함평군 월야(月也)·외치(外峙)리 일부, 임곡면 황계(黃溪)리를 통합해 장본면과 적량면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서 ‘본량’이 됐다. 남산, 송치, 산수, 선, 지산, 왕, 북산, 명도, 동호, 덕림, 양산, 동림동 등 12개 마을(법정동)을 담당하고 있다.

본량동은 광주의 원형이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터무니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산수동 용산마을 고인돌과 유물산포지, 입석마을 ‘선돌’, 동호동 본촌마을 고인돌 등은 우리가 잊고 지내 온 과거와 고스란히 마주하게 한다. 또한, 용산‧용수‧용강마을은 조선 시대 북창(北倉)이라 불리며, 바닷물이 들고 나는 항구 역할을 했다고도 전해진다.

이처럼 본량동은 오래전부터 우리 삶의 터전이자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마을이다. 남동마을 만취정과 남동영당, 남동사, 본촌마을 호은정, 송천 양응정 묘소(시 기념물 제8호)와 매동마을 매동사, 북성마을 창녕조씨삼강지려(시 문화재자료 제28호), 가마마을 오성술 의병장 순절비, 원당마을 오자치 원당영각 등 본량이 낳은 문인지사와 의병들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으며 본량이 품은 높은 기개와 정신을 알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용진산과 용진정사(시 문화재자료 제7호)다. 본량의 진산 용진산은 장성에서 남쪽으로 내려선 능선이 본량에서 솟아오른다. 쌍봉 중 날카로운 서편을 ‘석봉’, 동편을 ‘토봉’이라 부른다. 두 봉우리 사이 고개는 배가 넘어간다고 해 ‘배넘이재’라 칭했으며, 우뚝 솟아 ‘솟돌뫼’라 불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 ‘용진산’이 된다.

본량에서 나고 자란 이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는 용진정사는 한말 한학자인 후석 오준선 선생이 지은 정사로, 용진산 석봉과 토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한다. 노거수와 상록수로 우거진 용진정사 주변은 한 폭의 그림처럼 수려하며 5백 년의 수령을 가진 백일홍과 동백나무, 단풍나무와 비자나무, 철쭉 등이 사계절 요람으로 눈길을 끈다.

용진정사 터는 과거 용진사 또는 상원사라는 절터로 알려져 있으며, 용진정사는 일제강점기에 건립, 한말 의병들이 규합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오준선이 용진정사에서 배출한 문하생은 나주, 함평, 무안, 장성 등에서 살았던 600여 명의 선비로 이 중 오상열, 오성술, 이기손, 전수용 등은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오준선의 후석유고 ‘의병전’에는 이상의 4명의 의병장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금서 처분을 받을 만큼 의병사를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알려진다. 출처 /광산톺아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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