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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키워 자식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냈다

소 키워 자식 대학 보내고, 시집·장가 보냈다
1980년대 1일 소 250여 두, 돼지 100여 두 거래
덕림동 수성·복만·을림, 삼거동 응유마을 등 흔적
  • 입력 : 2021. 07.29(목) 18:28
  • 광산저널
[광산저널] 송정5일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만, 한때 우시장으로 명성이 높았다. 어떤 사학자는 우리 농부가 키워낸 소를 도축한 후 그 가죽이 일본 군경 의복이나 군화로 만들어져 다시 우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일제강점기부터 우시장이 있었고 송정장에서 소가 거래됐다고 한다. 1917년에 조사된 송정면 가축 수는 경지용 등으로 사용되는 축우가 216두, 말 8두, 돼지 820두, 산양 4두, 닭 1,926마리가 있었다.

현재 본량동에 거주하는 김모씨(1941년생)는 1970~1980년대 우시장에서 중간거래를 하던 거간꾼이었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1980년대 송정 우시장에 하루 출시되는 소는 250여 두, 돼지는 100여 두에 달했다.

8톤 트럭에는 소 20두, 그보다 작은 4~6톤 트럭에는 14두 정도 소를 실을 수 있었다는데, 이런 트럭이 우시장이 열릴 때면 서울에서 5~6대가 내려왔다고 한다.

소 중개인들은 어느 지역에서 장이 열리건 외지 중개인들이 많아 그들이 수익을 가져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송정 5일장은 경매수수료가 15,000~20,000원이었다. 공식 수수료는 5,000원이었지만, 나머지는 경매인이 사적으로 챙기는 금액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과하게 수수료를 챙겨갔기 때문에 외지 중개인과 협업이 어려웠고, 이런 이유로 우시장이 오래 가지 못했다고 한다.


소는 보는 눈이 있어야 한다. 소가 크다고 무조건 무게가 나가는 것이 아니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 물을 먹여 팔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오랜 경험자들은 구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서창, 동곡, 노안 쪽에서 소를 많이 키웠고, 서창에서만 트럭 1대 분량의 소 15~20두를 사왔다. 각 마을에도 소를 소개해주는 마을 중개인이 있었다.

이들과 신용관계를 쌓은 뒤에는 계약금 몇 만원만 주고 외상으로도 소를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 소 한 두 값은 1,500,000~2,000,000원에 거래됐다. 소를 거래할 때 세금은 2.5%로 1두당 5만원 정도였다.

당시 서울 마장동이나 강원도 횡성장에서 거래를 마친 뒤 송정역까지 밤기차를 타고 내려오곤 했는데, 현금을 들고 있어 이를 노리는 소매치기가 많아 잠도 자지 못하고 긴장해야 했다.

우시장이 열리는 날 강도, 소매치기에게 당했다는 옛날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송정우시장의 전통은 외지 중개인들의 수익권 이동에 따라 담양, 남원으로 옮겨갔다. 1990년대에는 우시장 넓은 공터에서 대선후보의 지원연설회가 펼쳐지기도 했다.

1970~1990년대 황금기를 누렸다는 송정우시장 자리는 현재 송정5일 시장 주차장이 됐다.

소를 키워 자식들 대학에 보내고, 시집장가 보냈다는 농촌지역 어르신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빛그린산단 부지로 수용된 광산구 덕림동 수성마을, 복만마을, 을림마을, 삼거동 응유마을 등에서도 그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과거 유물이다.

2020년 11월 말 기준 광산구에서는 120농가가 4,000여두의 소를 기르고 있다.

광산저널 webmaster@gsj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