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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도동,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너른 땅

탐방 / 광산구 21개 일선 동(洞)
삼도동,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너른 땅
고인돌, 입석 등 산재 청동기시대부터 거주했을 것 추정
호남대 건너편 조선 세조 무관 오자치 만든 ‘용마 바위’
태조 왕건 오 씨와 사랑에 빠져 다시 만남 다짐 희여재
청동기시대 대표 ‘삼거동 고인돌군’ 고인돌 49기 현존
  • 입력 : 2022. 01.21(금) 16:46
  • 광산저널
[광산저널] 삼도동은 광산구 행정동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다. 서쪽은 전라남도 함평군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병풍산을 사이로 나주시와 접해 있으며, 북쪽은 본량동, 동쪽은 어룡동·평동과 이웃하고 있다.

행정복지센터가 있는 도덕동을 비롯해 송산동, 지평동, 오운동, 삼거동, 양동, 내산동, 대산동, 송학동, 신동, 삼도동 등 11개 법정동을 담당한다.

조선 시대 나주목 삼가(三加)면과 도림(道林) 면이었다. 1914년 함평군 일부를 합하고 삼가와 도림의 지명 중 한 자씩 취해 삼도면(三道面)이 됐다. 1949년 광산군에 편입, 1988년 광산구 삼도 출장소, 1998년 삼도동사무소가 됐다. 삼도동은 넓은 만큼 자연마을도 많고 고인돌, 입석 등이 산재해 적어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집성촌이 많아 마을별로 사우, 재실, 입석, 비석 등 역사문화자원도 많은 편이다. 조선 시대 많은 학자와 선비들을 배출했다는 도림마을, 서산 유 씨 효열정려와 관경재·미륵불이 있는 송동마을, 조선 선조 때 우의정을 지낸 오겸이 1500년대 들어와 살았다는 내동마을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삼도 교회가 있는 신광마을, 돌담길이 운치 있는 쌍내마을 등이 있다.

바위, 고개, 다리, 산 등과 관련된 재미있는 전설도 많다. 호남대 건너편 강 길 따라가다 보면 민가도 없는 외지에 조선 세조 때 무관 오자치(吳自治, 1426~?) 장군이 만들었다는 ‘용마 바위’가 있다. 오 장군은 이시애 난을 토벌한 공으로 공신반열에 오른 인물인데, 모친상을 당해 시묘살이 하던 어느 날 애마가 강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자 이를 슬피 여겨 바위로 용마를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와 다른 전설도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용마 바위 머리와 목 부위를 깨트린 것을 후손이 복원했다고 한다.

‘희여재’는 오운동과 지정동 경계의 산 사이 고갯길을 말한다. 광산구는 지난 2018년 새날 학교-석문제-희여재-오운제-삼도초교를 잇는 누리길을 조성했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백제를 공격하고자 나주에 머물다 우물에서 빨래하던 오 씨 처녀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이후 개경으로 돌아가며 이 고개에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했다는 곳이 희여재(希汝峙)라는 지명으로 남았다.

신동 서복마을에는 효심 깊은 삼 형제가 살았는데, 병환으로 고생하는 부모님을 위해 약초를 구하러 다녔다. 약초를 구하려던 중 큰 천(川)을 만나 건너지 못하던 중 꿈에서 신령이 알려줘 큰 돌을 던졌더니 다리가 되어 건널 수 있었다는 ‘삼 형제 다리’ 전설도 전해진다. 서복마을과 내기마을 사이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를 하며 없어졌다고 한다.

문중 사우, 재실도 많다. 도림마을의 도림사는 노사 기정진, 후석 오준선(吳駿善, 1851~1931), 난와 오계수를 모신 사당이다. 내동마을엔 오겸(吳謙, 1496~1582)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광산사가, 대지마을에는 면암 최익현, 수당 류인석을 배향한 대산사가, 가산마을에는 양산 김우생(陽山 金佑生, 1372~1457)과 백촌 김문기(白村 金文起, 1399~1456) 절개와 의리를 기리는 화암사 등이 있다.
이 외 광주시 문화재자료 제17호로 지정된 ‘삼거동 고인돌군’이 칠성마을에 있다.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 49기가 23기, 26기씩 2개 군(群)으로 무리 지어 있는데, 26기 중 일부가 북두칠성 배치와 비슷해 마을 이름이 이 고인돌 형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과 풍수지리설에 따라 마을 앞 칠봉산과 관련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 등이 있다. 송학곡자와 삼도 교회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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