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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最古), 최대(最大), 최초(最初) 선사 유물 보고

광산구 마을탐방 신창동2
최고(最古), 최대(最大), 최초(最初) 선사 유물 보고
2,000년 전 영산강 변 정착한 마한인 대표적인 생활거점
틀·신발 골 출토 “삼한사람 가죽신 신고 다닌다” 사실로
발굴된 유물, 삼국지 위지 동이전 직조기술 사실로 증명
벼 껍질 압착 층 세계 최대 규모 당시 농업생산력 가늠
출토된 칠기, 철기·통일신라 시대 기술집단 존재 입증해
  • 입력 : 2022. 04.06(수) 12:59
  • 광산저널
[광산저널] 신창1제 맞은편 호남고속도로 변에 있는 선사유적지는 1963년 옹관묘 일부가 우연히 발견되면서 조사가 이뤄졌다. 1992년 저습지에서 머리빗, 칠기 굽잔 등 목칠제 유물과 토기류 등이 발굴되면서 그 학술적, 문화적,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십여 차례가 넘는 발굴작업이 계속되며 최고(最古), 최대(最大), 최초(最初)라는 수식어를 붙일만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오래된 현악기, 최초의 비단 출토
가장 오래된 현악기 슬, 최대 규모의 벼 껍질 압착 층, 최초의 비단 등이 출토됐고, 이곳에서 직접 천을 생산했음을 알려주는 바디, 실감개 등 베틀부속구와 수레바퀴, 칠을 모아 정제하고 지니고 다니면서 덜어서 바를 수 있는 칠 용기와 칠 주걱 등이 발굴됐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삼한은 방울과 북을 매달아 귀신을 섬기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 사용하는 슬(瑟)이 있는데 그 모양이 중국 현악기 축(筑)과 같다. 이것을 타면 소리와 곡조가 나온다”라는 내용이 있다. 또 “양잠을 알고 옷감을 만들었다”라는 직조기술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발굴된 유물로 기록의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벼 껍질 압착 층 155cm로 세계 최대 규모
지금까지 조사된 벼 껍질 압착 층 최고 두께는 중국에서 발굴된 72cm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발굴된 벼 껍질 압착 층은 155cm로 10t 트럭 50대 분량의 세계 최대 규모로 당시 농업생산력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초기 철기시대부터 통일신라 시대의 것까지 출토된 칠기는 숙련된 기술집단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당시 칠기는 오늘날 첨단산업과도 같다. 유적지 옆으로 흐르는 영산강(극락강)의 옛 이름이 칠천(漆川)이었는데 칠기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 발화 도구 발화막대, 발화대
이 외에도 발화막대, 발화대 등 우리나라 최초 발화 도구와 불을 붙였던 관솔을 비롯해 “삼한사람은 가죽신을 신고 다닌다”라는 옛 기록처럼 신을 만들 때 사용했던 틀, 신발 골도 나왔다. 신창동은 이렇듯 2,000년 전 영산강 변에 정착한 마한인의 대표적인 생활거점이었다. 첨단 기술과 풍요가 집약된 삶의 터전이었다. 유적은 초기철기 시대 농경 생활 양식, 생산, 유통 등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구가 지속되며 발굴했던 유물의 쓰임 처도 새롭게 알아내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
한편, 광산구 신창동에서 북구 동림동을 잇는 폭 6m, 길이 228m 옛 산동교라는 이름이 붙은 다리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 시설이다. 1934년에 건설되었는데 목포에서 북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우리나라 첫 번째 국도의 일부 구간이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6사단과 국군 5사단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적인 장소로 지금은 차는 들어갈 수 없고 사람과 자전거, 오토바이만 다닐 수 있다.
2022년은 신창동 선사유적지 발굴 및 국가사적 지정 30년이 되는 해다. 광주시는 광주의 중요한 문화자산인 신창동 유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산사체험학습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신창동과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시설로 탈바꿈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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