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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송정리역 ④
  • 입력 : 2024. 07.19(금) 09:40
[광산저널] ∎군용열차 ⌜상무호⌟ 종착역

송정리역은 군인 전용 열차인 ‘상무호’ 종착역이 되어 역대합실 한편에 군인전용 개찰구 TMO가 있어 헌병들이 근무하면서 이동, 휴가 군인들을 관리하면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1950년 한국 전쟁을 치른 뒤 송정리역은 또 다른 문화가 지역 상권을 좌우하기 시작한다. 국가안보 전제하에 후방 안보를 책임지는 육군 제2군사령부가 상무대에 유치된 것이다. 상무대에는 전투병과교육사령부(CAC)가 들어섰다. 보병학교, 포병학교, 통신학교, 기갑학교, 육군항공학교, 건설지원단이 설립되어 대한민국 육군이라면 대다수가 이곳에서 교육받았다. 그래서 송정리역은 상무대를 찾는 교육 장병과 장교들이 매일 같이 북적거렸다. 이와 함께 송정리역 구내에는 군 보급기지창과 수송관리부대. 헌병부대, 보안사 등 군사시설이 포진하고 있었다. 송정리역 주변은 군사문화의 터전으로 변해갔다. 나중에는 ’공군전투비행단‘까지, 생기면서 송정리는 군사도시를 방불케 했다.

∎송정리역과 국군 보급 기지창

송정리역 광장 서쪽 편으로 넓은 군 보급기지 창이 들어섰다. 보급창고들과 너른 야적장에는 석탄이 산처럼 쌓여 있어 군 트럭들이 실어 날랐다. 보급창고 앞 도로 건너편에는 세탁소 가게가 10여 개와 군장 품 판매소가 성시를 이뤘다. 세탁소를 통해 흘러나온 군복, 사지, 작업복, 군화, 담요, 배낭 등 군수 물자들이 민간인들 손에 들어와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특히 사지 군복은 장교의 정복으로 민간인들은 검은색으로 염색하여 수선해 신사복처럼 멋쟁이 옷으로 입기도 했다. 이렇게 군수 물자의 부정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면서 지역경제를 좌우했다. 더불어서 미군들이 즐겨 먹는 커피, 양담배, 껌 등, 군수품들이 시내로 흘러나와 유통되었다. 미군 트럭이 지나갈 때 우리는 헬로! 헬로! 하면서 손짓을 하면 가끔 깡통 씨레이션을 던져주기도 했다. 그날은 행운의 날이었다. ‘씨레이션’의 깡통 뚜껑을 열어보면 비스켓, 쪼코렛, 커피, 껌 등 이 있어 그 향기와 맛은 특별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대에 맛있는 그 향을 잊을 수가 없다

∎ 송정리역 농산물 운송과 ‘마르보시’

송정리역은 매년 늦은 가을이면 남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김장용 채소 즉 쥐꼬리 무, 배추를 비롯한 양념 채소를 서울로 올려보내는 전진기지가 되어 분주하다. 그럴 뿐만 아니라 전남에서 다량으로 생산된 쌀과 보리 등 미곡류 출하도 송정리역을 통해서 반출되다 보니 물량이 많아서 수화물 야적장에는 무 포대와 쌀가마니 등아 쌓여 있다. 생물이어서 제철에 제값을 받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서울로 올려보내야 하는 화주들은 역무원과 뒷거래해야 하는 등 경쟁이 심했다. 그리고 이 화물들을 기차에 싣기 위해서 빨강 모자를 쓴 건장한 ‘마르보시’(운반 노동자)들이 가마니, 포대를 쇠 갈고리로 찍어 어깨 위에 메고 기차 화물칸을 잇는 경사진 나무판 대를 오르내리며 화물칸 안에 차곡차곡 쟁여 싣는 진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석탄 열차에 올라탄 용감한 사내들

그 당시 연료는 석탄이었다. 열차도 석탄으로 움직이는 증기기관차였다. 전국적으로 석탄을 운반하는 전용 수송 열차가 운행되었다. 송정리역 뒷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 석탄을 훔쳐 팔았다. 송정리역에서 석탄 열차가 출발하면 용감한 사내 들은 삽과 부댓자루를 들고 석탄 칸에 올라가 부댓자루에 연탄을 담아
천천히 달리는 열차 밖으로 내 던진다. 어느 때는 자루에 담지 않고 삽으로 석탄을 철로가로 열심히 퍼 던진다. 열차가 점점 속도를 내면서 황룡강 다리에 도달할 직전에 열차에서 뛰어 내린다. 참으로 목숨을 걸고 하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리고 철로 가에 던져진 석탄을 마을 집으로 옮긴 뒤 구공탄 공장이나 송정 과자공장에 팔아 생계 수단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gsj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