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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5

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5
- 떠나가는 배의 ‘절망과 허무의식’
  • 입력 : 2024. 03.25(월) 15:51
[광산저널] 이제 본격적으로 용아 문학을 통해 선생이 추구했던 문학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자.

다 아시다시피 용아 선생은 동경 유학시절까지 수학을 좋아했던 이학도(理學徒)에서 시인으로의 전환도 드라마틱하지만, 그 이후 《시문학지》의 기획 및 발행인, 시인, 비평가, 번역가, 연극인 등 문예기획자로서 이름을 남겼다. 그렇지만 용아를 대부분은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오늘은 용아의 대표작인 〈떠나가는 배〉를 통해 당시 젊은이의 ‘절망과 허무의식’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 두 야 간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 거냐.
나 두 야 가련다.

아늑한 이 항구인들 손쉽게야 버릴거냐.
안개같이 물 어린 눈에도 비최나니
골짜기마다 발에 익은 뫼ㅅ부리 모양
주름살도 눈에 익은 아-- 사랑하든 사람들.

버리고 가는 이도 못 잊는 마음
쫓겨 가는 마음인들 무어 다를거냐.
돌아다보는 구름에는 바람이 헤살짓는다.
압 대일 언덕인들 마련이나 있을거냐.

나 두 야 가련다. / 나의 이 젊은 나이를 / 눈물로야 보낼거냐
나 두 야 간다.

- 떠나가는 배 전문(1930)

이 시는 1930년대 식민지 현실 속에서 한 젊은이가 겪어야 했던 정신적 갈등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그는 젊은 나이를 무기력하게 눈물로만 보낼 수 없어 어디론가 새로운 세계를 찾아 떠나고자 하지만, 특별한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 터라 막상 떠나려고 하니 여러 가지 것들이 마음에 걸린다. 자기가 오래 발붙이고 살던 땅에서 떠나 떠돌 수밖에 없던, 근거 잃은 유랑민의 비애 같은 것이 느껴진다.

1930년대에 우리 민족은 일제의 탄압에 견디지 못하고 해외로 유랑의 길을 떠났다. 일제의 탄압은 특히 젊은 사람들의 의욕을 꺾고 실의에 빠지게 하기에 청년들은 참다운 일을 찾아 ‘앞대일 언덕’도 없이 떠나가게 된다. 고국을 떠나는 사정이 타의에 의해서이기 때문에 ‘헤살짓는다’라고 말한다. 망명의 모습을 상상하며 조국을 떠나는 배로 비유하면서 울적한 심경을 노래하고 있다.

영랑과 함께 1930년대 시문학파를 주도했던 박용철은 이 시를 자신의 문학의 출발점이라 했다. 식민지 현실과 3․1운동 실패라는 시대적 배경에서 나온 이 시는 당시 문단의 절망과 허무의식을 그대로 담고 있다. 1

이 시가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은 한마디로 ‘쫓겨 가는 마음’이다. 그것은 파인(巴人) 김동환이 ‘눈이 내리느니’를 통해 보여 준 정경, 이용악의 시에 나타나는 유랑민의 비애와 같이 우리 민족이 제 땅에서 유배당했듯이 북간도나 만주 등지로 떠돌 수밖에 없던 식민지 현실의 뿌리 뽑힌 삶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시인은 젊은 나이를 눈물로만 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심정을, 항구를 떠나는 배에 비유하여 노래한다.

‘앞대일 언덕’ 즉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쫓겨 가는 마음’이기에 그것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가 발붙이고 살아온 터전을 돌아다보지만, 바람이 헤살지어 그것마저 구름에 가리운 채 어둡기만 하다. 그러므로 ‘나의 이 젊은 나이를 눈물로야 보낼 거냐’라는 결연한 의지도 그저 말일 뿐, 식민지 현실 속에서 겪어야 할 한 젊은이의 정신적 갈등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특히 ‘나 두 야 간다.’라고 띄어쓰기를 하여 호흡을 느리게 한 것은 ‘아늑한 이 항군들 손쉽게야 버릴 거냐’라는 구절과 연관하여 볼 때, 차마 떠날 수 없어 망설이는 심정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참고>
1. 문예운동가로서의 박용철의 삶과 문학 유승우(2010),
2. 시인 박용철 연구, 이향아(2010)
3. http://blog.naver.com/han13133 (최인호)
gsj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