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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6

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6
- ‘실제(失題)1’에서 만나는 그리움
  • 입력 : 2024. 04.11(목) 19:08
[광산저널] 용아 선생의 시를 읽고 있으면 만나게 되는 정서는 그리움이다. 물론 시라는 갈래 자체가 본질적으로 그리움을 바탕으로 한 언어예술이라는 점을 도외시할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움이란 존재하지 않은 것을 지향하는 정서의 형태이다. 현실에서 그리는 이상적 세계나 미완성의 상태에서 추구하는 완성의 세계는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민족지도자 33인의 한사람이었던 시인 한용운은 「님의 침묵」의 서문 격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衆生)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哲學)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薔薇花)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伊太利)다. - <하략>.”라고 말했다. 다소 장황하게 말을 이었지만, 그리움에 대한 다른 설명을 부연하지 않더라도 시적 그리움에 대해서는 어렴풋하게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있어야 할 이상의 세계를 지향하려고 할 때 두 세계 사이에는 충돌하게 되며 충돌은 두 세계 사이에서 긍정적일 때는 그리움으로 부정적일 때는 상실감으로 나타난다. 이 상실감은 쓸쓸함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실망과 슬픔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조그만 시인이여 어찌 내 앞에 와 서는가
내 앞에 와서 무슨 말을 써보려는가
아프리카의 탁 터져 끝없는 벌판에
우거진 숲 그늘과 촬촬거리는 시냇물이 그리워
내 눈이 눈물을 흘린다고 마치
계집애의 사랑을 잃고 가슴 짜내어 우는
두 볼 여윈 시인의 얼굴로 내 낯을 그리려는가
네 스스로의 달콤한 설움을 버리고
나의 가슴을 네 가슴으로 받아들이어
나의 굵은 말을 네 말을 삼으라 시인이여

- ‘실제(失題) 1’ 전문 -

이 시는 화자가 시인에게 당부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시인이 슬픔에 빠지지 않기를 당부한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달콤한 설움’이나 두 볼 여윈 얼굴로 사랑을 잃은 계집의 울음을 전하지 말라고, 화자가 가지고 있는 굵은 말을 시인의 말로 삼아 독자에게 전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시이다.

이것은 겉으로는 당부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내면으로는 강한 역설을 담고 있다. 화자가 이런 당부를 시인에게 하는 이유는 시인이라는 존재가 운명적인 슬픔을 전하는 사람이며 슬픔을 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당부이기 때문이다.

용아 선생의 시의 주요 주제인 그리움 혹은 쓸쓸함의 정서는 학자에 따라 달리 명명하고 있다. 김용직은 『현국현대시 연구』에서 “김영랑의 섬세하고 영롱한 언어의 아름다움과 탄력 있는 리듬의 세계를 이룩하였고, 정지용이 시각적 이미지와 언어감각으로 새로운 방법을 개척하는 등 형식미를 갖추려고 한 것에 반해, 박용철은 철학을 중요한 시의 내용으로 담는 일에 주력하면서 그 철학 속에 비애와 애수를 테마로 채용했다”라고 주장하였다.

용아 선생의 시적 주요 정서를 비애와 애수라고 하는 견해는 김학동의 주장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용아 선생의 초기시를 <표랑과 비애의식>, <비와 애수>, <바람과 허무>, <향수의 의미> 등으로 분류하고, 이들 시의 공통점은 허무와 비애, 애수의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비해 시인 이향아는 용아 선생의 비애와 애수를 보다 정서적으로 약화한 ‘우수(憂愁)’로 표현했다. 그것은 시인의 정서가 비애 혹은 애수라고 할 수 있지만, 그 내부에 강한 해결 방법을 스스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용아 선생의 비애나 애수는 시인을 적시거나 상처를 입힐만한 심각한 깊이를 가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학자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용아 선생의 시 전반의 주요 정서를 상실감과 비애, 애수와 우수 등을 포함한 그리움으로 넓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삭막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정서라는 점에서 용아 선생의 그리움에 대해 느끼는 것은 즐거운 일임이 틀림없다.

<참고>
1. 『한국현대시연구』, 김용직 (1979)
2. 시인 박용철 연구, 이향아(2010)
3. 용아 박용철의 예술과 삶, 광산문화원(2010)
이 gsjn@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