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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7

민족 문예운동가 용아 박용철 선생의 문학 산책 7
- 대지를 적시는 비와 어머니
  • 입력 : 2024. 04.29(월) 16:42
  • 이성환 시인
[광산저널] 작년 이맘때쯤 하늘을 보며 원망을 한 적이 있다. 기상관측 이후 최악의 가뭄으로 우리 지역 주요 댐 저수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며 일부 지역은 6개월 넘게 정상적인 물 공급을 받지 못한 채 고통을 받았고, 이에 따라 지자체는 생활용수 가뭄 5단계 중 '경계' 단계까지 올라 물 절약을 호소하였다. 만약 비가 많이 내리지 않았다면 30년 만에 제한 급수가 이루어졌을 거라는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올해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인제 그만 내렸으면 할 정도로 비가 내려 마음을 심란하게 하고 있다.

비와 시인의 상관관계에 관한 연구가 많은 이유는 정서(情緖)를 매개로 하는 시인의 숙명일 것이다. 비가 내리면 사람들의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유는 인간의 공통적인 감정인 듯하다. 비를 보면 없는 추억도 생각나게 하는데, 하물며 시인에게 비란 작품 창작의 숙명적 과정이다. 용아 선생도 비를 통해 드러내는 정서적 유대감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세염도 없이 온 하루 나리는 비에
내 맘이 고만 여위어 가나니
아까운 갈매기들은 다 젖어 죽었겠다

- ‘비 내리는 날’, 시문학 창간호(1930) -

시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5편의 작품 중 하나인 용아선생의 ‘비 내리는 날’을 이재창 시인은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시는 죽음의 이미지를 통해 우수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 내리는 비에 마음조차 여위어 가는 것은 불안과 절망의 표현이며, 비에 맞아 갈매기가 ‘젖어 죽었겠다’라는 것은 불안과 절망 속에서의 삶과 죽음의 대비를 통한 인생의 비애를 나타내고 있다. 많은 시에서의 비의 의미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여기서는 삶과 죽음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하나의 모티브 역할을 하고 있다. 온종일 내리는 비를 상상해 보면 우리는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선생에게 비가 가져다주는 이미지는 희망의 메시지보다는 우수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개인의 비애와 우수를 넘어서 ‘아까운 갈매기들이 다 젖어 죽었겠다’라는 이타적 정서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선생이 끝끝내 시인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드러난다.

다음 시 역시 비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여타의 다른 시와는 사뭇 다른 정서가 나타난다.
불도 없는 방안에 쓰러지며내쉬는 한숨 따라 「아 어머니!」 섞이는 말모진 듯 참아오던 그의 모든 서러움이공교로운 고임새의 무너져 나림같이이 한 말을 따라 한 번에 쏟아진다 많은 구박 가운데로 허위어 다니다가헌솜같이 지친 몸은 일어날 기운 잃고그의 맘은 어두움에 가득 차서 있다쉬일 줄 모르고 찬비 자꾸 나리는 밤사람 기척도 없는 싸늘한 방에서 뜻 없이 소리내인 이 한 말에 마음 풀려짓궂은 마을 애들에게 부대끼우다엄마 옷자락에 매달려 우는 애같이그는 달래어주시는 손 이마 우에 느껴가며모든 괴롬 울어 잊으련 듯 마음 놓아 울고 있다
- ‘비에 젖은 마음’ 전문 -

시를 통해 본 시인의 상황은 비애를 넘어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 찬비 내리는 밤, 불도 없는 방안에 쓰러지며 일어날 기운조차 사라져버린 지친 몸. 그냥 죽을 것 같지만, 그런데도 기척도 없는 싸늘한 방에서 울부짖으며 ‘아! 어머니’를 찾고 있다. 옷자락에 매달려 우는 애를 달래주시는 어머니는 시인에게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고 대지(大地)의 포근함이기에 단말마(斷末摩)의 순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식민지를 살아가는 지식인에게 현실은 죽음보다 더 비참하기에 자신이 처한 절망의 공간을 비에 젖은 마음이라는 제목을 통해 표현하고 있으며 어머니를 통해 치유하고 있다.


<참고>
1. 용아 박용철의 예술과 삶, 광산문화원(2010)
2. 이재창, 그리움의 시학(詩學). 박용철, daum 카페
이성환 시인 gsjn@daum.net